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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만원의 교훈

부다페스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사를 왔다. 이 과정에서 황당하게 43만원을 허공으로 날렸다.

1.

시작은 부다페스트 숙소의 드럼세탁기 문이 망가진 것이었다. 세탁기를 만진 기억이 없는데, 호스트는 내가 문의 연결 고리를 망가트렸고, 내 체크인 당일에도 자신은 세탁기를 멀쩡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억울했지만, 2만원이면 문을 고칠 수 있다고 해서 그 돈을 체크아웃날 주기로 합의했다.

교훈 ☞ 장기 또는 한달 살기 숙박 시 첫 날 집안 곳곳에 물건, 가구 상태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체크아웃날 물건이나 가구가 망가졌을 때 억울하게 배상할 수 있다. (물론 세탁기 문은 내가 부엌에서 무의식적으로 발로 차거나 장바구니에 부딪쳐 망가진 것일 수도 있다)

2.

3월 6일 체크아웃 당일, 나는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를 모두 사용하고, 2만원이 없었다. 어차피 리스본으로 가기 때문에 유로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고 숙소 옆에 있는 ATM 기기에서 300유로를 출금 했다. ATM 수수료가 많이 나와봐야 5000원 수준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없이 출금 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43만원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갔고, 300유로가 약 38만원이니 나는 5만원을 수수료로 낸 것이다.

교훈 ☞ 부다페스트 주요 관광지 (7구, 9구)에는 환전소 및 ATM 기계가 많은데, 환전소 앞에 붙어있는 환율 및 수수료를 꼼꼼히 확인하고 환전 또는 출금을 진행해야 한다. 환전소의 경우, 10% 이상 떼어가는 데도 있다. ATM의 경우, 씨티은행 또는 opt ATM을 통해서만 진행하자. 아니면 나처럼 출금 금액의 12%를 수수료로 내는 불상사가 발행한다.

3.

피같은 5만원이 아까웠지만, 호스트에게 2만원을 지불하고 비행기 시간에 늦어 빠르게 짐을 정리하고 나왔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려고 하니, Wizz Air 항공사에서 내가 온라인 체크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50유로(63000원)을 더 내야 입국 수속이 가능하다고 했다. 온라인 입국에 대한 어떤 통지나 이메일도 없었기 때문에 말도 안된다고 말했지만, 티켓을 예약할 때 관련 내용이 적혀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 나중에 이 항공사의 리뷰를 보니 나와 같이 온라인 체크인을 알지 못하고 돈을 날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 리스본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50유로를 체크인 가격으로 지불했다

50유로를 내고, 체크인 수속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내 짐의 무게는 16kg 였고, 비행기 티켓은 10kg의 짐만 커버가 가능했다. 20kg의 짐을 실으려면 85유로(약 10만원)를 더 내야 했다. 난 그 돈은 못 낸다며 캐리어 안의 백팩과 삼각대를 꺼내고 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백팩과 삼각대를 꺼내자 9kg로 무게가 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팩 2개를 가지고 비행기에 들어가려면 추가로 35유로(4만 5천원)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짐을 줄이거나 합치는 것이 불가능한 나는 35유로를 내기로 합의했다.

교훈 ☞ Wizz Air 는 사기꾼이다. 실제로 TripAdvisor 리뷰에 보면 나처럼 온라인 체크인을 하지 않거나, 작은 핸드백이나 쇼핑백 때문에 40~50유로 씩 추가 비용을 낸 사람이 엄청 많다. (리뷰에 scam, theif, worst 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https://www.tripadvisor.com/Airline_Review-d8729187-Reviews-Wizz-Air )

Wizz Air는 헝가리 저가 항공사인데, 부다페스트에서 타 유럽국가 이동 시 대다수 최저 가격을 제시한다. 하지만 수하물 추가 비용을 고려하면 절대 최저가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핸드백에 35유로 가격을 매긴다.) 그리고 리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객 경험이나 만족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회사이다. 대다수 저가 항공사가 체크인 3~4일 전에 온라인 체크인을 하라고 이메일을 보내주거나 알림을 주는데, Wizz air는 어떤 공지나 알림도 없이 약관에 깨알같이 써놓고 오프라인 체크인 시 50유로를 내라고 한다.

Wizz Air를 꼭 이용해야 한다면, 온라인 체크인을 꼭 하고 깨알같은 수하물 약관을 꼼꼼히 확인 후 티켓을 끊자.

4.

내 돈 85유로를 가져간게 미안한지, 항공사 직원은 캐리어에서 꺼낸 두번째 백팩을 수화물로 보내라고 조언했다. 큼지막한 2개 백팩과 카메라, 삼각대를 모두 들고 타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아 두번째 백팩을 수하물로 보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갑자기 내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백팩과 주머니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짐을 잔뜩 들고 수속을 하다가 어디에다 흘린건가 괴로워하는 도중, 두번째 백팩을 보낼 때 그 안에 지갑을 넣어둔 것이 떠올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수화물에 보내는게 더 안전할거야. 어차피 도착하기 전까지 유로도 필요 없잖아’ 라는 생각과 함께.

3시간 비행동안 내가 잃은 178,000원을 떠올리며, 조금 더 정신차리고 착실하게, 정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죄책감에 이북으로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을 읽었다. 뒤늦게 항공사 체크인해서 그런지 내 자리는 비행기 맨 앞자리 프리미엄 좌석이었고, 양 옆에 아무도 없었다. 50유로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리스본 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을 찾았다. 두번째 백팩을 열자 다행이 지갑이 있었다. 그런데 지갑을 열자 195유로가 남아있어야 하는데, 5유로 밖에 없었다. 항공사 직원이 (어쩌면 두번째 백팩을 수하물에 맡기라고 조언한 직원이) 내 백팩을 열고 지갑에서 돈을 가져간 것이다. 항공사 직원이 돈을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직원이 캐리어를 열어 돈을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는 열기 쉬운 백팩이었으니… 5유로를 남긴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 돈으로 스타벅스 콜드 브루를 사서 타는 속을 잠재웠다

교훈 ☞ Wizz Air 는 도둑놈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 잘못도 크다 ㅠ 항공사를 이용 시 귀중품은 절대 수하물에 넣지 말자. 핸드폰, 노트북, 카메라, 현금 등 귀중품은 모두 가지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Wizz Air에 해당 내용을 문의로 넣었으나 수하물 분실은 약관상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답변만 받았다.

5.

돈의 크기와 관계없이 헛돈을 날리게 되면,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한다. 포린트는 왜 다 써서 ATM에서 유로를 뽑았을까. 유로는 2만원만 뽑지 왜 300유로나 출금했을까. 항공사 추가 비용을 카드로 지불하지 굳이 현금으로 내겠다고, 매고 있던 백팩에서 지갑을 꺼냈을까. 두번째 백팩은 왜 수하물로 보냈을까. 거기에 지갑은 왜 넣었을까 등.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또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생기는데, 100만원이 아니라 43만원을 출금한 것, 두번째 백팩에 카메라나 노트북을 넣지 않은 것 등

재밌는 건 돈을 잃었을 때의 짜증 정도를 생각하면, 세탁기 2만원 > 수수료 5만원 > 항공사 바가지 11만원 > 수화물 직원이 훔쳐간 돈 24만원 순서라는 것이다. 마지막에 출금한 모든 돈을 잃었을 땐, 이건 분명 나에게 인생의 깨달음을 주려는 신의 계시야. 처음부터 내 돈이 아니었던 거야. 이번 달에 돈도 아껴쓰고 열심히 돈도 벌어야지! 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피어올랐다. 인간의 심리란…

부다페스트는 편하게 서울처럼 느끼며 지낸 도시였지만…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안녕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지내면서 ‘다른 도시에서 한달 사는 거 별거 아니네, 서울에 사는 거랑 비슷하네’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를 반성한다. 친절한 웃음 뒤에 수수료를 12% 떼어가는 ATM이 있는 도시이다

​6.

포르투갈 리스본은 부다페스트에 상처받은 내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훈훈했던 우버 드라이버, 아늑한 집, 엄마같이 따뜻한 호스트.

7.

안녕 43만원.. 좋은 곳에 쓰이길..

 

2 Comments

  1. 솔솔님의 가슴은 쓰리겠지만, 저는 읽는 동안은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 나도 여행하면서 그런 경험이 있답니다. 렌탈 카를 반납하면서 100바트도 안되는 연료를 더 넣으면 되는데, 규정을 따져서 300바트를 요구한다든지..
    저번 여행에서는 방콕공항에서 캐리어 하나를 잃어 버렸는데, 보상은 킬로당 20불. 가치로 따지면 2-3백만은 되는데. 절대 공항이 안전한 곳이라 믿으면 안된답니다.

    얻고 잃고 그게 다 인생입니다.

    1. 안녕하세요. 부다페스트 공항에서의 사건은 제 부주의가 큰 것 같습니다 하하. 그 당시에는 화가 많이 났는데 돌아보면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여행에서 공항에서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공항에서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교훈을 뒤늦게 얻었습니다. 하하. 블로그 방문주셔서 감사드리고 장수님의 2020년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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