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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를 맞이하며

돌아보면, 지금까지 소거법으로 모든 선택을 했다. 소거법은 선택지 중 틀린 것을 하나씩 제거해 마지막에 남는 것을 답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나의 이야기

프리랜서 웹 개발자/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서울에서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아직 생소하다.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프리랜서로 사는 것에 대해 상상조차 못했다. 당연히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 전문성을 찾아 커리어를 착실히 쌓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졸업 후까지 3군데의 대기업에서 인턴을 했다. 인턴을 하며 대기업의 문화와 업무 방식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업무의 a-z까지 전체 과정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기업에는 10년 후 과장급이 되어서야 그것이 가능했다. 조금 더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타트업에 들어갔지만, 3년 동안 3번의 스타트업을 옮기며, 스스로 조직에 융합하지 못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Airbnb 호스트와 아마존/이베이 셀러

동시에 이것저것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았다. 궁금하면 바로 해보는 성격이고, 고민하기보다는 행동을 빠르게 한 뒤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경험론자이다.

대기업 인턴십을 끝내고, Airbnb 호스팅과 Amazon과 Ebay에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도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둘 다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올린 집과 물건을 외국인들이 실제 빌리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계속 이어져 지금은 4년차 호스트와 아마존/이베이 셀러가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부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회사를 옮길 수 있었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수입이 내 선택들을 쉽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20년동안 한국에서 초중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 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머리에 박혀있었다.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커리어와 네트워크를 쌓고,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서 빠르게 승진하는 삶- 지난 선택들은 이 모든 것에서 빗나갔고 오랜 기간 불안했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불안과 자책이 멈춘 것은 다양한 에어비엔비 게스트들을 만나고부터였다. 지난 3년동안 살고 있는 집의 방 한칸을 외국인들에게 빌려주었다. 그동안 100명이 넘는 외국인 게스트가 우리집에 짧게는 3~5일, 길게는 3달동안 묵고 갔다. 매 주 다른 나라에서 온 게스트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살고 있는 사회, 문화가 우연적인 것이고 수만가지 삶의 방식 중에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것, 다수의 시선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 마음에 굳게 자리잡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에야 진짜 원하는 것, 하고싶은 일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를 만드는(Create)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내 개성이 담긴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3번째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스타트업에서 웹 개발을 독학으로 배웠다. 영상을 전공했기 때문에 디자인 툴은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었지만, 웹 개발은 생소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구조가 재미있었고, 평면적인 디자인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사이트를 구현한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의 강점을 생각해보았다. 디자인과 개발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웹사이트 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코딩/디자인 툴을 다룰 수 있었고 사이트 운영 및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었다. 개인 사업자나 스타트업에 웹사이트 외주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회사를 나왔다.

다행히 회사 밖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주로 개인사업자/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외주 프로젝트와 웹 제작 그룹/1:1 수업을 진행했다. 회사 다닐 때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회사원인거 같았는데 밖으로 나오니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프리랜서로 일하며 실력이 충분치 않아서, 클라이언트나 수강생과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족해서 자주 괴로웠다. 규칙적인 생활을 만들기 어려웠고, 밤을 새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일이 나와 잘 맞는다고 느꼈고,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서울을 1년간 떠나기로 결심하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소거법으로 모든 선택을 했다. 소거법은 선택지 중 틀린 것을 하나씩 제거해 마지막에 남는 것을 답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대기업이라는 선택지를 제거하고, 스타트업도 제거하고 남은 것이 프리랜서라는 직업이었다. 선택마다 불안했고, 착실하게 한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었고, 다음 선택은 조금 더 쉬웠고, 나다웠다.

올해 서울을 떠나 1년동안 1~2달에 한 번씩 사는 도시를 옮겨 살기로 결심했다. 제 2의 자아를 찾는다거나, 세계 곳곳을 탐방하겠다는 여행의 목적은 아니다. 서울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이 선택은 20대의 그것처럼 불안하거나 무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이가 드는 것은 나를 더 잘 알아가고, 내 선택에 편안해지는 것이 아닐까. 30살의 시작이 나쁘지 않다.

2 Comments

  1. 안녕하세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30대입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구독을 하고 여기까지 방문하게되었네요.
    아주아주 보석같은 글들을 많이 남겨주셔서 이 홈페이지의 애독자가 될듯합니다.
    이 글 ’30대를 맞이하며’ 의 울림이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듯하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올라올 시행착오와 한솔님의 발자취들을 기대해봅니다.
    엄청난 글솜씨와 재능을 가지신듯합니다.

    언젠가 이 블로그의 글들이 세월이 흘러 쌓이면
    한권의 책으로 출판될 날을 기대해봅니다.

    타지 생활이 고되시겠지만, 돈과 경험을 바꾼다면 저라면 경험을 택하겠다는
    여전히 조금은 어린 마인드로 살아가고있는 저이기에,
    저의 눈에는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듯하네요.

    이 댓글 기능을 홈페이지에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안녕하세요
      서울을 떠나면서 홀로 생각을 정리하고자 쓴 글인데,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게 기쁘네요.

      응원과 따뜻한 격려의 말 감사합니다.
      특별한 일 없는 생활이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 배운 것들을
      블로그로 기록하고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경험들이 추후 디지털 노마드 삶을 계획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자주 소식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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