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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네번째 토요일

다른 도시에 한 달을 머물며 여행의 루틴이 생겼다.


매주 토요일, 하나의 장소를 정해놓고 그 장소로 걸어가는 길에서 발견하는 풍경, 공간, 만남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오후 12:00

오전에 온라인 수업을 하고, 12시쯤 느즈막히 집을 나왔다.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다. 왜인지 리스본에서는 서울에서 주로 가던 젊고 트렌디한 카페들을 방문하지 않았다. 동네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운영하는 소탈하고 편안한 카페에 익숙해졌고, 일부러 꾸민 티가 나지않는 인테리어와 소품들도 정겹다.

오후 12:30

리스본의 건물들은 알록달록한 색상 뿐 아니라, 햇살 아래 빛나는 다채로운 타일 양식이 매력적이다. 다른 유럽 도시에서는 교회나 성당 등 특정 목적의 건물에만 타일 아트가 사용되는 반면, 리스본에서 문양 타일(아줄레주)은 일반적인 건축의 재료로 실생활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오후 1:30

1시간을 걸어 Carpintarias de São Lázaro 에 도착했다. 과거 목수가 사용하던 창고를 개조한 문화 공간으로 현재 2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천장이 매우 높고, 햇빛이 공간 곳곳에 차분히 스며들어 있다. 빛을 완전히 차단한 지하 공간에서 Marina Abramovic 전시는 큰 울림을 주었다. 리스본에는 왜 이렇게 좋은 공간들이 많은 걸까… (그리고 좋은 공간이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후 3:00

갤러리에서 나와 핸드폰을 충전할 겸 주변 카페에 들어갔다. 포르투 토닉이라는 흥미를 끄는 칵테일을 주문했는데 환타 맛이 강하게 나는 달콤한 술이다. 가게 안에는 주인집 딸로 보이는 소녀가 맥주 비슷한 색상의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에는 남자셋 여자셋 풍의 하이틴 드라마가 상영 중이다.

오후 4:30

드디어 토요일의 목표 장소였던 플리마켓(Mercado de Santa Clara)에 도착했다. 리스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플리마켓으로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열린다. 서울에서 겨울 옷밖에 가져오지 않아 얇은 코트를 하나 사고 싶었지만, 딱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플리마켓은 규모도 크고, 물건도 다양하고 다른 도시의 마켓들보다 가격도 저렴했다.

오후 6:00

플리마켓 근처 건물에 앉아 쉬다가 약속장소로 향했다. (건물에서는 독특하게 베지테리언 음식만 판매하는 주말 장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 주, 리스본에 사는 두 명의 한국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한 분은 페이스북 리스본 렌트 페이지를 통해, 다른 한 분은 내 블로그를 보고 댓글로 연락을 주었다. 같은 시기에 리스본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해 세 명이 토요일에 만나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Teatro Taborda. 극장 아래 층에 도시 풍경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위치하고 있다.

오후 8:40

카페에서 만난 상현님과 민지님과 오래 대화를 하다가, 함께 파두 공연을 보자며 거리로 나왔다. 상현님과 민지님은 리스본에 지낸지 한 달 정도 되었지만, 곧 떠나는 나와 다르게 여기서 1년을 머무를 예정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주변의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사는 것 같았는데-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고, 해외에 나와보니 개개인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놓여져 있다.

리스본 살기 꼬꼬마인 우리들은 토요일 파두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고.. 결국 동네의 작은 술집에 들어가 1000원짜리 체리주와 하우스 와인을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오전 12:00

올해 1년동안 도시를 옮기며 어떤 풍경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그 시간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성실히 쓰고 기록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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