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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세번째 토요일 | 영국 펍 문화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은 멋진 경험이다.

오전 11:00

오전에 3시간 온라인 수업을 마치자, 몸이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창문 밖에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하다. 런던 여행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 어제 밤에 읽다만 서머섯 몸 책을 읽고 싶었다. 서머싯 몸은 국내에는 [달과 6펜스] 소설로 유명한 영국 작가이다. 그는 한평생 여행을 했는데, 작가가 된 이후로는 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지냈다. 이 때문에 그의 소설과 산문에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교하는 내용들이 종종 나오는데, 모옴 특유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유머러스한 묘사가 재미있다 .

2시간 정도 침대에서 뒹굴뒹굴 책을 읽으며…게으름을 피다가 며칠 전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한솔아 그건 다른 때도 할 수 있잖아”

맞아. 이 책은 언제든 읽을 수 있지만, 런던은 곧 떠나니까… 젖은 빨래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외출할 준비를 했다.

영국인들은 무슨 직업을 가졌든 호색한 (사랑을 좋아하는) 민족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열정적인 것이라기보다 감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자손을 번식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는 성적이었으나, 성행위는 혐오스럽다는 본능적 느낌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랑을 열정보다는 애정 또는 자비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대학교수들이 학술 서적에서 다룬 사랑의 승화 작용은 찬성의 눈빛으로 바라봤으나, 사랑의 노골적인 표현은 혐오하거나 조롱했다.

프랑스에서는 여자에 대한 사랑때문에 신세를 망친 남자를 일반적으로 동정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고, 그런 행동을 한 남자는 그런 사실에서 자부심마저 느낀다. 영국에서는 그런 남자를 바보로 여길 것이고, 또 당사자도 자신을 한심한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때문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희곡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었다. 관중은 여자 때문에 제국을 내던진다는 것을 경멸스러운 일로 여겼다. 그 희곡이 역사적인 사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면 영국인들은 일치단결하여 그런 일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서머싯 몸 [서밍 업] 중

오후 2:00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뛰어가 버스에 올라탔다. 그제서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두툼한 외투를 입고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 앱을 확인하니 영상 10도에 흐림,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다. 저번주까지만 해도 모두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듯 겨울 옷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다. 런던의 날씨는 트럼프보다 변덕스럽다고… 순진하게도 얇은 폴라티 한 장을 입고 화창한 날씨가 지속될거라 믿었던 것이다.

오후 3:30

추위에 떨며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에 도착했다. 미술관 문을 열자 아래쪽으로 쭉 뻗은 미끄럼틀 형태의 출입로가 인상적이다. 테이트 모던은 Natalie Bell 과 Blavatnik 두개의 빌딩으로 이루어져 내부에는 5-6개의 무료/유료 전시관, 3개의 갤러리 샵,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카페, 바가 위치하고 있다. 피곤함과 추위 때문에 지쳐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무료 전시들을 하나씩 보았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전시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도 했는데 사진은 한 장 밖에 찍지 않았다. 왜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점점 힘이 들까? 사진은 과거를 회상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찍는 순간 현재의 깊이를 무너트린다. 눈만 깜박이면 사진이 찍히는 기술이 곧 나오기를.

​스마트폰 카메라는 우리의 또다른 눈이 되어가는걸까

오후 05:00

서리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 쇼디치에 가야했다. 서리님은 온라인 수업에서 만난 수강생으로 영국에서 아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포트폴리오(링크)를 온라인 수업을 통해 2주간 제작했고, 둘 다 런던에 있는 것는 것이 신기해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쇼디치까지 대중교통을 타거나 걸어서 갈 수 있었으나… 추워서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외투를 사거나 택시를 타는 것 중 택시가 더 저렴할 것 같아 우버를 불렀다.

* 런던에서 검정 택시를 탈 경우, 기본 요금은 8200원(5.6 파운드) 정도로 비싸다. 우버 X의 경우 기본 요금이 4500원(2.5 파운드)로 택시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우버도 호출이 많은 피크시간에는 추가요금이 붙어 검정 택시만큼 비싸지므로… 런던에서는 편한 신발을 신고 걸어다니는 것이 가장 좋다…

우버 드라이버는 30년 전에 런던에 이주한 파키스탄 분이셨다.

다음은 우버 드라이버와 나의 대화

우버드라이버: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런던에서 무엇을 할거니? 어디어디 가봤어?
나: 사치미술관과 하이드파크 공원 가봤어요. 저번주에 해크니 쪽 가보았는데 좋더라구요. 이스트런던이랑 갤러리더 보려구요.
우버드라이버: 런던에 처음 왔다면 던젼(The London Dungeon)을 가봐야해 거긴 웅장한 건축믈 뿐 아니라 런던의 모든 역사가 담겨있어. 그리고 런던 아이(The London Eye)를 타고 런던 풍경을 쭉 봐야지
나: 던젼이랑 런던아이는 관광객이 너무 많지 않나요? 조용한 곳을 좋아해서…. 한적한 동네 가서 구경하고, 휴식 취하려구요.
우버드라이버: 달링, 던젼이나 런던 아이는 방문객에게 런던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거야. 런던에 대해 알고싶다면 필수적으로 가야하는 곳이라고.
나: (수긍하며) 그렇군요. 가보도록 할게요. (하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던젼과 런던아이는 붐빌 뿐 아니라 티켓 가격이 비싸다..)

테이트모던에서 쇼디치까지 우버로 20분 정도 소요되었고, 비용은 10파운드(15000원)이 나왔다.

오후 5:40

쇼디치 메인 거리(Shoreditch High Street)은 서울의 이태원이나 홍대 메인거리와 비슷한 느낌으로 개성있는 가게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고 쇼핑을 하거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메인 거리는 사람들이 많고, 다소 지저분해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브랜드 매장들, 독립 영화관, 카페들은 튀지 않으면서 우아한 멋이 있다.

오후 6:30

서리님과 만나 Brewdog 펍에 들어갔다. 영상 통화로만 보다가 직접 만난 서리님은 서글서글한 인상에 편안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했다. 브루독(Brewdog)은 스코틀랜드에서 2007년 시작한 수제맥주 브루어리로 현재 서울 이태원을 포함해 전세계에 지점이 있을만큼 성공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브루독 쇼디치 지점은 이태원 점과 분위기가 비슷했으나, 사람들은 훨씬 많았다.

서리님과 맥주를 마시며 알게된 영국의 펍 문화

1. 영국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맥주를 (많이) 마신다. 주말 뿐 아니라 주중에 퇴근 후 홀로 또는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고, 낮에도 맥주를 마신다. 하지만 점차 마트에서 맥주를 사먹거나, 건강을 생각해 맥주를 줄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과거보다 펍 소비율이 줄고 있다.

2. 동료들과 술을 마실 때는 돌아가며 맥주값을 계산한다. 첫번째 round는 내가 냈으면, 다음 round는 너가 내는 방식이다. (나도 서리님과 4차 round까지 돌아가며 계산했다 ㅋㅋ)

3. 펍에서 칵테일은 마시지 않는다… 메뉴에 있더라도 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4. 술을 마실 때는 술만 마신다. 음식을 곁들어 먹는 경우도 있지만, 서울처럼 안주를 잔뜩 시켜서 술을 마시진 않는다.​

5. 이성과 첫 데이트를 할 때는 주로 술을 마시며 친해지지만, 펍에서 모르는 이성에게 작업을 걸거나 합석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6. 펍에 개를 데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브루독에도 3명 정도 있었는데, 개들이 시끄러운 펍 안에서 굉장히 조용히 앉아있었다.

 + 슈퍼마켓에서 술을 살 때, 구매자가 25살 이하로 보이면 신분증을 요구한다. 처음 런던에 도착해 와인을 구매할 때 신분증을 요구해서 내가 뭘 잘못했나 걱정했다. 내가 20살 이하로 보이는건가 싶었지만…그건 아니었다… 영국의 법적인 음주 가능 나이는 만 18세이다.

오후 12:10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밤 12시였다… 쇼디치에서 숙소까지는 1시간 40분은 걸리는데… 더욱 큰 문제는 핸드폰이 꺼진 것이었다. 서리님은 내려야할 지하철 역과 버스 번호를 몇 번이고 알려주며, 떠나는 나를 걱정했다. 추위 때문에 길을 걸으며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다행히 집에 잘 도착했다. 서리님과 즐거웠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다음에 만날 때는 몇 시간이 흘렀는지 확인하며 맥주를 마시기로 약속했다. 서리님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은 멋진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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