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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리포트

Welcome to Argentina!


1.
12일 수요일 밤, 여기서 구매한 중고 맥북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도난당한 맥북이 와이파이에 연결되었다는 icloud 알림이 왔다. 공항에서 가방을 잊어버린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맥북이 발견된 장소는 내 숙소에서 고작 3km 떨어진 곳이었다. 도둑은 일주일쯤 지났으니 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났을거라 짐작하고 게스트 계정으로 접속한 걸까. 미리 icloud에서 잠금 설정을 걸어나 도난당한 맥북은 와이파이가 연결되자마자 암호가 걸렸고, 나의 연락처와 이메일이 알림으로 전송되었다. 내 가방을 훔쳤는데, 맥북을 찾았다고 친절하게 연락을 해줄리는 만무하겠지… 알림을 받자마자 친구에게 부탁해 발견된 장소와 인접한 경찰서에 연락했다. 경찰은 내 관할 경찰서가 수사해야 한다며 다음날 오전까지 기다리라는 답변만을 주었다.

2.
다음날, 관찰 경찰에게 전화해서 수사를 요청하려 했으나 하루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직접 맥북이 연결된 장소에 가보았다. 거기에는 불법노동자나 노숙자들이 모여사는 낡은 창고가 있었고, 조금 열린 문 틈 사이로 낡은 물건들이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들 중 한 명이 공항에서 내 가방을 훔쳤고, 맥북을 일주일간 만지지 않고 보관하다 열어본 것이라 90%정도 확신했다.

맥북이 연결된 장소에 있는 창고

3.
창고 주변에 위치한 애플 수리 매장에 가서 혹시 한국 키보드가 있는 맥북의 수리나 판매를 맡기러 온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젊고 활기찬 직원은 그런 사람은 없었지만 무슨 일이냐고 자세하게 묻고, “Welcome to Argentina” 라고 위로를 하며 119를 부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4.
동네 경찰이 창고 주변으로 찾아오고, 맥북을 찾을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저 낡은 창고의 구석 어딘가 내 맥북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지금 창고에 맥북이 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창고로 들어가는 사람 중 한명과 이야기를 했으나, 단순히 그 안에 누가 살고있는지만 물었을 뿐 수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5.
범인과 맥북이 바로 앞에 있는데.. 잡지를 못한다니.. 나는 창고 건너편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앉아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범인을 잡는 것보다 맥북을 찾는게 더 중요하니까, 창고 문을 두드리고 맥북을 일정 비용을 내고 사겠다고 제시하는 것은 어떨까? 창고 주변에 맥북을 돌려주면 사례하겠다는 전단지를 뿌리는 것은? 경찰의 도움없이 맥북을 찾을 수 있는 다소 위험한 방안들을 골몰하다가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커피와 전통 파이(Empanadas)가 나왔다.

6.
전통파이를 한 입 배어물자, 뜨거운 블루치즈와 고기 육즙이 흘러나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 여정에 알게모르게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 가게들에 들어가서 질문을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경찰서에 드나들고- 지금까지의 한 달 살기보다 도시와 사람들의 여러 단면을 보았고, 교훈도 많이 얻었다. 흥미로운 모험을 하고 있다는 기분좋은 떨림이 일었다. (물론 이 흥분은 집에 와서 중고 맥북을 구매하고 새 디스크로 교체하는데 사용된 카드값을 보고 말끔히 사라졌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중고 맥북도 서울보다 2배 정도 비싸다…)


맥북을 도난당하고 2012년형 중고 맥북을 구매했다. 내가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사용하려면 SSD 디스크가 필요해 눈물을 머금고 애플 매장에서 구매했다. 애플스토어 직원들은 맥북 사용 뿐 아니라 수사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르헨티나 중고거래마켓 mercadolibre 에서 구매한 2013년형 중고 맥북 프로. 근 몇 년간 아르헨티나 경제가 침체하며 중고거래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7.
올해 6번 사는 도시를 옮기며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매일 매고 다니던 가방을 잃어버린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CCTV에 범인의 얼굴이 잡히고, 위치가 노출된 후에도 경찰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로변에 위치한 낡은 창고 안에 눈이 빨간 노숙자들이 살고 있는 것도 놀라웠다. 내 상상 밖의 사건, 사고, 부조리한 일들이 앞으로도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올라왔다.

8.
맥북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월요일에는 전화를 며칠째 받지 않는 관할 경찰서에 직접 방문해 볼 예정이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면 모든 것이 조금 더 쉬었을 텐데… 사람은 자고로 아는게 힘이다.

+ 맥북을 도난당하거나 잃어버렸을 때
맥북을 잊어버렸을 때, 아이클라우드에서 발견 시 사운드 및 잠금 설정을 하도록 지시하는데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나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맥북을 빠르게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맥북이 잠기면 범인이 더이상 노트북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다. 맥북이 잠금 상태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해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2018년형 맥북은 처참하게 분해되어 부품이 팔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 분실이 아니라 도난 당했을 때, 맥북을 찾고 싶다면 아이 클라우드에서 알림 설정은 하되, 잠금이나 사운드 설정은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단순 분실의 경우에는 알림 메시지에 꼭 사례금을 언급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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