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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올해 1년 간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서울의 익숙함에 지쳐있었다.


유럽에서 5개월을 지내고, 남미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아래 문장이었다.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올해 1년 간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서울의 익숙함에 지쳐있었다.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에서 감지되는 무언의 메시지가 소음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명료하게 보지 못했다. 서울을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해외에서 살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학이나 취업이다. 하지만 두 선택지 모두 준비하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기회비용이 컸고, 나에게 어떤 도시가 맞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프리랜서로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생각의 전환이 찾아온 것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난 뒤였다. 지난 3년동안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의 방 한 칸을 외국인 게스트에게 빌려줬다. 100명이 넘는 게스트들을 만났고, 같이 밥도 먹고 여행도 다니며 친해진 친구들도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서울 여행을 왔다가 이 도시가 좋다며 1년 뒤쯤 다시 돌아와 한두달 씩 서울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단순히 도시를 더 알아보고 싶어서 몇 달씩 서울에 사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도시에 살아보고 싶으면, 그냥 살아보면 되는구나”

당시 1년 반 정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나가서 사는 것에는 어떤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그렇게 작년 10월 ‘1년 12개 도시 한달살기’를 결심했다. 올해 12개 도시에서 한 달씩 지내보고, 정말 마음에 드는 도시나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도시가 생기면 그 때 그 도시에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혹은 서울이 그립고, 서울에서 하고싶은 일이 생긴다면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3개월동안 서울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베를린으로 떠나는 편도 항공권을 끊었다. 처음이라 조금 겁이 나서, 과거 2주 정도 여행한 베를린을 첫 한달살기 도시로 정했다. 공항으로 떠나는 날,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두려움과 설레임이 사그러져가고, 벌써 6개 도시에서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보다는 홀로 있는 시간 안에 스스로의 무지함을 깨닫는 시간이 많았다. 서울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허둥대던 20대의 모습이 자주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사람들에게 여행의 이유를 묻는다면, 그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다. 나는 고요함을 원했고, 익숙한 도시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들어보고 싶었다. 이 시간들이 쌓이면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있을까. 새하얀 질문들을 붙잡고, 현재와 과거, 미래의 시간들이 교차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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